아무튼 되게 희한한 사람이 있었다.


일단 좀 보면 정신이 없었다. 정신은 없는데 아 정신 사나우니까 가만 좀 있어봐요, 하고 싶은 종류는 아니고 그냥 그 정신없음을 가만히 지켜보게 되는 그런 사람인 거다. 태양이 제가 떠오른 시간 동안 충실하게 사람을 푹푹 찌우는 여름날처럼, 여기 이 장소에 존재하는 모든 순간을 참 충성스러운 알바생으로 보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다만 태양빛처럼 이 하루에 잘 어울리지는 않고. 어딘가 붕 떠 있는 거였다. 그 점이 참 희한했다. 이상하지도 않고 희한했다. 


사실 정신없다 말고 표현할 다른 좋은 말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냥 내가 그리 어휘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뭔가 가져다 붙이고 싶은 말이 분명 있기는 한데, 자꾸 가라앉으려 드는 티백처럼 잘 떠오르질 않았다. 에어컨 하나는 참 시원하게 잘 틀어주는 카페 구석 자리에 앉아서 가만 턱을 괴고 물끄러미 그 사람을 보았다. 돈을 세고 있었다. 카페에 오래 엉덩이 붙이고 있으면 못 볼 장면은 아니다. 알바가 정산 하는 거. 다만 저게 벌써 몇 번째인가, 그런 거지.


궁금해지긴 했다. 캐릭터를 수집하는 인간으로서의 직업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직 직업이라 하기엔 지망생 수준에 불과해서 어디 드러내놓고 말하기도 창피하지만, 여튼 그랬다. 강박증 같은 거라도 있나. 아니면 정산 틀려서 크게 데인 적이 있나. 여러가지 이야기를 상상해 볼 수 있었지만 문제는 거기 있지 않았다. 뽑아낼 수 있는 이야기보다 사람 자체가 궁금해지는 데에 있었다. 저 사람 밥은 먹었나. 이거 끝나면 뭐 하는 걸까. 아니지, 마감까지 있던데. 근데 맨날 있는 건 아니잖아. 여기 없는 날엔 뭐 하는 거야. 그런 자질구레한 것들. 너무 근거 없는 호기심이라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물어보러 에너지를 쓰기에는 기운 빠지는 여름이었다.


어느 날은 그림을 그렸다. 평범한 얼굴이긴 한데 평범하진 않은 그 모습을 그렸다. 돈을 몇 번씩이나 다시 확인하고, 음료를 만들고, 사람이 없을 때면 괜히 어딘가를 닦고, 물소리, 무언가 갈리는 소리, 잠시 카운터 뒤에서 나와 테이블과 음료 반납대를 정리하는 손끝, 희미한 분위기, 웃음은 없었다. 이 역시 괴상한 일이라 말할 수 있는 게, 원래는 관찰의 가지가 여기까지 닿지 않는다. 진작 커다랗고 투박한 가위를 들고 듬성 듬성 가지를 쳐 냈어야 하는 궁금증이고 관찰의 시간이다. 꽤 유쾌하거나, 재미있고 독특한 요소가, 겉이든 속이든 잔뜩 있는 사람이었으면 몰라, 그 사람은 글쎄다. 그냥 거기 있었을 뿐이다. 일을 하면서. 좀 과하게 열심히 하면서.


또 어느 날은 슬쩍 이름표를 봤다. 아이스 바닐라 라떼 하나 맞으시죠, 맛 없는 목소리에 익숙해진 후였다. 카드를 내밀며 흘긋 살핀 유니폼은 애매한 각도로 가려져 있어 훔쳐보기 어려웠다. 현, 현... 눈을 억지로 가늘게 떠 가며 어깨를 조금 옹송그렸나, 어떤 시선이 머리 끝에 느껴지는 것 같아 고개를 들었더니, 아, 눈 마주쳤다. 영수증 버려 드릴까요. 그리 묻는 말이 툭 떨어졌다. 물음표 없이 참, 그 사람다웠는데, 언제부터 그 사람다운 걸 내 안에서 정의 내렸던지는 잘 모르겠다.


다른 날은 비가 왔다. 카페는 똑같이 시시한 모양이었지만 비를 피하는 손님들을 위한 우산꽂이를 하나 만들어 놓았다. 물기만 없지 잔뜩 축축한 비 내음을 털어내며 우산을 꽂아 넣다가 문득 그 사람을 봤다. 어서 오세요, 목소리는 아아까 작은 파동이 되어 머리칼을 훅 스치고 지나갔는데, 말을 한 사람이 과연 맞는가 싶게 시선은 다른 데에 가 있었다. 창 밖은 어느새 어둑하고, 토독 토독 맺혀, 모여서 흘러가는 빗방울의 연주가 마음에 들었던 걸까. 마음에 들었다기에는 그 사람 눈꼬리가 희한하게 처져 있었다. 희멀건한 뺨이 느리게 올라오는 손에 가려졌다. 마른 세수를 하고는 그 사람이 한숨이나 쉬었다. 얼굴 반쪽을 가리는 곧은 손가락 틈새로 뭘 읽었던가.


그리고 그날 밤도 더웠다. 덥기만 한 게 아니라 습해서 불쾌지수도 높았다. 침대에 누워 선풍기를 켜 놓고, 윙윙대는 모기를 한 손으로 대충 쳐 내며 곰곰 생각에 빠졌다. 빠졌다기보다 그 흐름에 말려 들어갔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사람 생각에 휘말린 게 오랜만이라, 불쾌지수인지 다른 뭐인지 마음에 안 들게 피어올랐다.



하여간 참 희한한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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